[아무아카] Magnolia
- 먼지 김
- 2018년 10월 26일
- 4분 분량
W. 리게(@rg0819)
우성알파x열성오메가
여느 날과 다른 바 없는 평일 오후의 포아로.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가게 앞을 쓸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나온 아무로 토오루는, 어디선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페로몬의 향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다지 강하지 않은, 아무래도 열성 오메가의 것으로 추정되는 페로몬의 향이었지만, 그렇다고 이걸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로는 들고 나왔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한쪽에 가지런히 두고 향이 흘러나오는 곳을 따라서 가게 옆 작게 나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런 곳에서 무슨 추태인가요?”
골목 안에서 사람의 형체를 목격한 아무로는 속으로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럽고 울퉁불퉁한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온몸으로 볼품없는 페로몬을 뿜어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저가 잘 알고 있는 FBI의 에이스, 아카이 슈이치였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이죠?”
“…무시하고 가는 게 좋아.”
“뭐? 무시? 남의 가게 옆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는데 어떻게 무시해요? 마스터한테 혼나요.”
“…….”
이봐요. 대답해요, 대답. 제 말을 무시하는 아카이를 발로 툭툭 차니, 기분이 나쁘다는 듯 고개를 들어 그를 째려본다. 평소라면 조금 움찔했겠다만, 오메가의 페로몬을 뿌리고 있는 주제에 그런 표정 해봤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심지어 그 어느 알파여도 넘어갈 만한 우성 오메가의 강한 페로몬도 아닌, 열성 오메가의 볼품없는 페로몬을 뿜고 있는 그를 누가 무서워하랴. 아무로는 그런 그를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벽에 기대앉아 있는 그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라이. 모로보시 다이. 그리고 아카이 슈이치…. 조직 시절의 당신이란 사람은 그 누구도 뛰어넘지 못하는 상위 1%의 우성 알파라고 들었습니다만.”
“…….”
“그런 것도 다… 조직에 잠입해서 스파이 노릇을 하기 위한 거짓말, 이었나 보네요? 어떡하나. 나한테 오메가인 거 들켜서.”
“버, 번….”
“여기 포아로 근처니까 그런 호칭은 삼갈래요? 그나저나 이걸 어쩌면 좋아. 나 정도의 우성 알파라면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볼품없는 열성 오메가지만 또 알아? 이대로 내버려 두면 머저리 같은 녀석이 이 근방을 지나가다가 당신을 겁탈할지도.”
아무로가 그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아카이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고 내뱉는 숨은 거칠다. 허옇고 생기 없던 피부가 열이 올라 조금 붉은 기를 보이니 그게 나름대로 볼만하다고 아무로는 생각했다. 눈앞의 알파를 원하는, 열이 잔뜩 오른 녹색의 눈동자가 사실 조금 마음이 동했지만, 아쉽게도 지금 여기서 품에 안을 정도로 구미가 당길 정도로 뛰어난 오메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조직에서 몰래 훔쳐보았던 조직원들의 신상정보에 라이는 분명 우성 알파라고 기재 되어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순수한 의문이 아무로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뭔가, 궁금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구나….”
“네. 조직에 있던 당신의 신상정보, 그곳엔 분명 우성 알파라고 기재되어있던 사람이 왜 지금 열성 오메가가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났는지 궁금해서요.”
“흥, 그런 걸 너한테 말해 줄 이유는 없……. 아무로 군, 이거 놓고 이야기해.”
무서운 얼굴로 제 멱살을 잡은 아무로를 쳐다보았다. 아무로 딴에는, 오메가 주제에 건방진 말을 하는 아카이의 꼴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후-. 한 번 크게 숨을 내뱉은 아무로가 잡고 있던 멱살을 놔주고는 말했다.
“오메가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뭐, 좋아요. 당신이 과거에 알파였든 베타였든, 지금 현재 오메가란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안내해요.”
“어, 디를…?”
어디긴 어디에요. 당신이 지금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숙식을 해결하는 그 집, 쿠도 신이치의 집이죠. 자신의 팔을 잡고 몸을 일으키는 아무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오메가를 찍어 누르려는 알파에 대한 공포를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운명의 짝이 없는 아카이의 목덜미를 지금이라도 당장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콱- 물어버릴 것 같은, 그런 다듬어지지 않은 공포가 첨단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로는 그런 아카이의 상태를 눈치 챘는지, 입에서 그를 비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카이의 모습에 아무로는 지금 당장 배를 부여잡고 얼이 빠지라 웃고 싶었지만 그래도 체면이 있지. 언제나 아카이 앞에서 조급해지던 그였지만, 이번은 아니다.
“뭘 겁먹고 그런 표정을 짓고 있나요? 당신 이 상태로 혼자 집 못 가잖아. 그래서 친히 우성 알파인 이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다는 건데.”
“…포아로의 일은 어쩌고.”
“아, 그거요?”
아카이의 말에 아무로는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한쪽 손으로 아카이의 팔을 잡은 터라 다른 한 손만으로 핸드폰을 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즈사 씨? 죄송한데 저 지금 바로 조퇴해봐야 할 일이 있어서요. 마스터에게는 몸이 아파서 들어가 본다고 말씀 좀 잘 해주세요. 부탁해요.”
“…….”
자, 이걸로 됐지? 아무로의 얼굴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팔을 붙잡힌 채, 어서 집으로 안내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 아카이는 어쩔 수 없이 그를 현재 자신이 사는 그 거대한 저택으로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키야 스바루가 자기 자신이란 사실을 들킨 지 오래라 상관은 없었지만, 절대로 그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이 열성 오메가라는 사실과 원래는 알파였던 자신이 조직의 어느 실험으로 인해 열성 오메가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은 더더욱. 다행히도 조직의 실험과 관련된 일은 말을 꺼내지 않아 아직은 모르는 듯싶었지만, 조금 더 강하게 추궁해 온다면 언제 들킬지 모르는 일이었다.
“타세요.”
“…아무로 군. 이걸로 충분해. 이미 자네의 페로몬이 내 몸에 어느 정도 묻은 듯하고. 이 정도면 다른 놈들이 들러붙는 일은, 윽…!”
아무로의 손에 억지로 밀려 결국 조수석에 타고 말았다. 사람의 호의를 베풀면 무시하지 말아야지. 얼음장같이 차가운 그의 목소리가 아카이의 귀를 타고 뇌까지 흘러 들어갔다.
“당신이 이제껏 어떤 알파들을 만났는지는 모르겠어도, 나는 시중에 널린 어중이떠중이들이랑은 다르니까요. 그나저나 그런 몸 상태로 포아로 근처까지는 왜 온 거예요?”
아무로의 체취가 가득한 차에 올라탄 탓일까. 조금 가라앉았다 싶었던 발정기가 체내에서 순환을 거쳐 다시금 아카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열이 올라 멍멍한 상태로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왜 그곳까지 갔더라? 이유는 포아로의 위층에 사는 에도가와 코난이라는 소년을 불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렇군. 그래서 그런 아무도 안 다니는 골목으로 몰래몰래 온 겁니까. 오키야 스바루의 분장을 하고 왔으면 안 그래도 됐을 것을. 아, 그 얼굴로 대로변에서 히트 사이클이 왔다면 더 큰 일이 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응…. 실은 꼬마가 오키야가 아니라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그래서 그랬어….”
“…지금 당신, 상태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잠깐이지만 눈 붙이는 게 어때요? 아무 때다 손을 대거나 그런 놈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저, 정말 그래도 되나…?”
네, 그럼요. 어차피 당신 같은 볼품없는 오메가는 줘도 안 먹어요. 아무로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아카이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쿠도 저택까지 차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그래도 눈을 감고 안정을 찾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은 되니까. 하지만 그 덕에 아카이는 알지 못했다. 운전대를 잡은 아무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속으로 제 옆에 있는 오메가를 어떤 식으로 잡아먹을지. 우선 그 집에 있는 억제제나 다른 약을 찾아 없애 버린 뒤, 그를 제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무로는 점점 차의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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