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본라이] 사고
- 먼지 김
- 2018년 10월 26일
- 3분 분량
W. 솜미루(@sommiru)
우성알파X우성 오메가
그래요, 그건 아마 한 달 전 쯤 이었을 겁니다. 분명 라이와 둘이서 임무를 나간 날이었죠. 둘 다 제정신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하필이면 둘 다 억제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갑작스러웠던... 사고였죠. 사고. 라이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좋겠네요. 분명 그럴 겁니다. 무엇보다 그는... 아니, 아닙니다. ...후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이만하죠.
-
아무로 토오루, 버본은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충분히 자기를 통제할 수 있었고, 고작 페로몬 따위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도 아니었다. 적어도 삼십분 전까지는 누구나 수긍할만한 이야기였기에, 버본 자신조차 자신이 이렇게까지 이성을 놓을거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무엇이 그를 제정신이 아니게 했을까 곰곰히 되짚어보면 그는 여러 가지 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운전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페로몬을 조절하지 못했고, 하필이면 베타 혹은 알파라고만 생각했던 동승자가 오메가, 그것도 사이클이 꽤 가까웠던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 강철같은 몸이 감기에라도 걸린 것인지 아침부터 상태가 좋지 않더라니, 정보 탐색을 다녀온 사이에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버본은 차 문을 열자마자 숨이 막힐 것만 같은 페로몬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게 무슨 일이죠?”
“...하아, 보면 알잖아.”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요. 당신 오메가였어요?!”
“쉬이, 소리가 너무 크군, 버본. 후우... 상황파악 했으면 빨리 가지 않겠어?”
라이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한 듯 했지만, 말하는 중간 중간 뱉는 숨이 거칠었다. 히트사이클. 그것도 평소에는 어떻게 숨겼나 싶을 정도의 강한 페로몬을 가진 우성 오메가의 그것이었다. 왠만한 페로몬은 버본을 눈도 한 번 깜짝이게 할 수 없겠지만 왠만한 것이 아닌게 문제였다. 라이의 페로몬지독할 정도로 끈적하고 달콤한 향에 머리털 끝까지 삐죽 솟는 기분이었다. 이 상태라면 약도 소용이 없을 게 분명했다. 히트사이클이 온 사람에게 운전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길 한복판에 내버려 두면 얼마나 될 지 모르는 숨은 알파들을 다 끌어 모으겠지. 버본은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더니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 흉악한 페로몬 좀 어떻게 안 됩니까?”
“흐으, 그게 됐으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겠지.”
“억제제, 가지고 있지 않나요?”
“주기가 아니라서, 하필이면 들고오지 않았지...후우... 지금 먹는다 해도 이미 늦었어.”
“칫, 안전띠나 꽉 잡으시죠. 바쁘니까.”
흉악한 페로몬이라, 라이는 그 말을 하고 싶은 건 자신이라고 쏘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제 페로몬의 영향을 받아 쏟아져 나오는 버본의 페로몬은 더욱 몸을 조여왔다. 이건 위험한데... 머릿속의 경고등이 시끄럽게 울렸다. 서로의 페로몬을 끌어내 차량 내는 열기로 가득 찼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차량도 심하게 흔들렸다. 평소에는 속도는 빨라도 거칠진 않은 운전을 했던 것 같은데, 운전을 하고있는 버본도 그리 여유로운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격렬하게 움직이던 차량은 얼마 가지 않아 멈추었다. 빠른 속도긴 하였으나 얼마 가지 않았으니 꽤 거리가 있던 세이프 하우스는 아니겠지. 눈 앞이 아찔했지만 겨우 눈을 뜨고 보니 모텔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여긴...”
“그럼 그렇게 페로몬 조절도 안 되는 상황에서 거길 가자고? 잔말말고 기다려요. 방 잡고 올 테니까.”
“... 흐으... 부탁하지...”
숙박업소의 성수기 같은 것은 아니어서, 방을 잡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라이는 버본이 내리라 하는 소리에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싸는 감각이 어쩐지 생소했다. 버본을 따라 움직이는 몸은 열이 올라 삐꺽거렸지만, 그렇다고 계속 차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억지로라도 발을 놀렸다. 급하게 잡은 방은 꽤나 좁았지만 두 사람은 그것이 신경 쓰일만큼 여유가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아, 쓸데없이 진한 당신 페로몬 때문에 이게 뭡니까?”
“그건, 내가 하아... 할 말이야. 버본. 빌어먹을 네 페로몬이나 어떻게 해보라고.”
쓸데없는 말다툼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로 우성알파와 우성오메가의 페로몬이 부딫히고 있는 상황에서 이만큼이나 이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도 기적인 지경이었다. 끈적한 두 페로몬은 창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작은 방 쯤이야 순식간에 그득히 채워나갔다. 식은 땀이 흘렀다. 열망에 잠긴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생각이 사고를 잠식해왔다. 확실한 것은 이 지독한 갈증은 물로는 채울 수 없으리라는 것뿐이었다. 저 페로몬을 어서 집어삼키고 싶다. 그런 비슷한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는 움직임만이 남았을 뿐이다.
-
그래, 아마 한 달 전 쯤 이었지. 버본과 둘이서 임무를 나가야 했던 날이었을거야. 드러냈다면 조직에서 실험이다 뭐다 하며 귀찮아졌을 테니 형질을 숨기고 있던 탓이 컸어. 버본도 그런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그 일은 사고였지. 하필이면 주기에서 벗어난 히트사이클이 온 것도 모르고 약을 먹지 못한 우성오메가와 그 페로몬에 러트가 온 우성알파가 서로의 영향으로 사이클이 앞당겨져 일어난 사고. 본딩이 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지. 그도 사고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니 이야기는 이만하지.
Comentarios